[민철기의 개똥法학] 동기와 보상의 상관관계

입력 2024-01-17 18:16   수정 2024-01-18 00:15

최근 발표된 사법정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민사 본안 접수 건수는 2013년 116만4395건에서 2022년 82만9897건으로 28.7% 감소했다. 형사공판 접수 인원도 같은 기간 35만8213명에서 31만502명으로 13.3% 줄었다. 그러나 사건 평균 처리 기간은 민사 본안(1심 합의 기준)이 245.3일에서 420.1일로 증가했다. 형사공판(1심 합의 불구속)은 158.1일에서 223.7일로 늘었다. 사건은 줄었는데 사건 처리 기간은 늘어난 셈이다. 조희대 대법원장도 재판 지연 문제 해소를 사법부의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과연 재판 지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우선 신속한 재판이 가능하도록 기존 제도나 관행을 과감하게 바꿔야 한다. 법관들이 판결문 작성에 들이는 불필요한 노력을 줄이고, 핵심적인 쟁점 판단에 많은 시간을 들일 수 있도록 판결문을 간이화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판결문은 자족성을 중시하다 보니 쟁점과 무관한 사실관계 정리 등에 과도한 노력과 시간이 들어가는 경향이 있다. 이에 따라 정작 핵심 쟁점에 관한 논증은 부실한 사례가 있다.

원칙적으로 1심을 단독화하는 방법으로 재판부 수를 늘리고, 이에 따라 발생하는 부작용은 항소심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 인사이동 주기 등을 늘리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제도·관행 과감하게 바꿔야

다음으로는 사법행정권자가 적극적으로 사건을 관리해야 한다. 법원장 추천제는 법관들의 투표로 선출된 복수 후보자 가운데 법원장을 임명하는 제도이므로, 태생적으로 사법행정권을 제대로 행사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사무 분담에 있어 사법행정권자의 권한과 책임을 강화해 적재적소 원칙에 따라 역량 있는 법관을 중요 재판부에 배치해야 한다.

법관의 평정에도 미제분포지수가 차지하는 비중을 늘려야 한다. 미제분포지수란 미제사건 현황을 나타내는 수치로, 장기 미제사건이 적체될수록 지수가 낮아진다. 또 개별 사건의 심리 경과와 결론의 당부 등을 가장 잘 아는 상급심 법관에게 하급심 법관에 대한 공식적인 평정권을 일부 부여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법관들에게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현재와 같이 경력 16년 차 법관을 전부 부장판사로 보임하고, 그중 일부를 3년여에 걸쳐 고등법원 판사로 선발하는 시스템은 동기 부여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 일정 연차 이상의 1심 법관 중 역량 있는 사람을 선발해 합의부장에 보임하거나 수석부장, 법원장 등 관리직군으로 임명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고등법원 판사의 임기를 10년으로 제한해 원칙적으로 순환보직제로 운영하되 그중 일부만을 고등법원 재판장으로 선발하는 방안 등도 고려해봐야 한다.
동기 부여가 최우선 과제
재임용 심사 강화도 필요하겠지만 인정욕구가 강한 법관 조직의 특성을 고려할 때 불성실한 판사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보다는 열심히 일하는 판사가 적절한 보상을 받도록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것이다. 최근 한창 일할 나이의 역량 있는 법관이 매년 수십 명씩 무더기로 사직하는 것을 조직 전체의 위기로 받아들여야 한다.

필자는 동기 부여가 첫 번째고, 제도나 관행의 개선이 그다음이며, 사법행정권 강화는 동기 부여의 종속변수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심리학에서는 사람이 보상 때문에 어떤 행동을 하면 ‘외재적 동기’라 하고, 그 자체가 즐거워서 어떤 행동을 하면 ‘내재적 동기’로 본다. 내재적 동기에 기반한 행동이 더 지속 가능하지만, 이것은 외재적 동기 부여에 비해 훨씬 어렵다고 한다. 그러므로 동기 부여가 필요하다면 어느 정도 적절한 보상을 수반하는 방안이 현실적일 것이다.

법관 또는 법관 조직을 바라보는 근본적으로 다른 두 개의 입장이 있는 것 같다. ‘법관은 보상체계와 무관하게 언제나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야 하며 실제로 대부분의 법관은 그러하다’와 ‘법관도 인간이고 사법부도 관료 조직이므로 열심히 일하는 판사에게는 적절한 보상을 해야 조직이 효율적으로 운영된다’는 시각이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내재적 동기 부여를 강조하는 전자였다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외재적 동기 부여의 영향력을 중시하는 후자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두 시각의 중간 어딘가에 정답이 있겠지만, 재판 지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시대적 과제라면 지금은 보상체계를 강화할 시점이 아닐까.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정확히 진단했다면 그 후에는 과감한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

민철기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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